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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와현의 역사와 문화를 더듬어 보면, 에도시대(1603년~1868년)에 이시카와현을 지배한 가가지역의 번주/영주인 마에다(前田)가문과의 스토리를 알 수 있습니다. “가가의 백만석꾼”이라 불린 마에다가문은 도쿠가와가문 다음의 세력이 있었던 관계로 도자마다이묘(1600년의 세키가하라전투 이후에 도쿠가와가문을 섬긴 번주)로서 도쿠가와 막부의 경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역대 가가번주는 모반이나 야심이 없다는 것을 도쿠가와막부에 보여주기 위해 무력과시를 피해 막부의 경계를 피했으며, 그 중에서도 3대번주인 마에다 쓰나노리는 문화장려책을 펴, 일본 전역에 알렸습니다.
가나자와성이나 성하도시를 정비하였고, 교토나 에도로부터 고도의 기술을 지닌 장인들을 불러 가가지역에 세공소를 설립하여 공예에도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당시 일본을 통치하고 있었던 에도막부에 대해, 반역의 의지가 없다는 의미로 문화진흥책을 폈던 것입니다. 그것을 기초로 현재도 다도나 노가쿠(能楽가면음악극)가 번성하였고 예능도구로 사용하는 가나자와하쿠(금/은박)나 가나자와칠기, 가가유젠(염색), 구타니야키(도자기) 등 10품목의 국가지정전통공예품이 육성되고 있습니다. 교토에 이어 국내에서는 두 번째로 큰 규모입니다.
단노우라 전투 후, 노토로 유배된 헤이케의 장수, 다이라노 도키타다의 후손이라 일컬어지는 도키쿠니 가문의 호화로운 저택.
겐로쿠엔은 에도시대의 회유임천식 정원의 특징이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대표적인 정원으로 미토의 가이라쿠엔, 오카야마의 고라쿠엔 함께 일본의 3대 정원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기타 가문은 가가 백만 석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지방관리로 그에 걸맞는 격식으로 집을 지으라는 영주의 명령을 받들어 지은 집. 옛 모습 그대로 300 년의 세월을 견뎌왔습니다.
가가번의 중급 무사들의 저택자리로, 지금도 성하도시 시대의 모습이 짙게 남아있는 곳. T 자형과 L 자형으로 뒤얽힌 골목은 성하도시 특유의 것으로 무사저택 토문과 대문은 400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남기고 있습니다.
가부키 "간진초"로 일본 전국에 알려진 아타카노세키. 800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소나무 숲 속에 사적지를 알리는 표식이 서 있고, 벤케이와 요시쓰네, 관문지기 도가시의 동상이 바닷바람을 받으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당시의 낭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소박한 마을에 잘 어울리는 온화한 느낌의 붉은 기와 지붕, 얼핏 보기에도 듬직한 바다 사나이의 미의식이 결집한 듯한 집 모양새를 볼 수 있습니다.